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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 소설

열 수 없는 門

by 꽃밭재꽃무리 2012.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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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열 수 없는 門

 

                                                                                                                          白雲김주선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리 넓지 않은 사무실엔 직원인 듯 한 남자와 구직을 하러온 듯 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해람에게 일제히 시선이 꽂혔다가 무심히 돌아갔다.

“장 해람씨? 장 해람씨 왔나요?”

“네에.”

한참을 기다린 해람이 명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디보자, 아가씨가 해람인가? 어이구 이거 너무 미인이구만.어때, 오징어다리 하나 뜯으

려나?”

남자가 책상서랍을 열고 마른오징어를 쭉 찢더니 해람의 눈앞에 불쑥 내밀었다. 쿵쿵한 오징어 특유의 냄새가 훅 풍겼다.

“아니요,”

해람이 살짝 미소 지으며 고개를 살랑거렸다.

“그래? 어디보자, 일어서서 한 바퀴 비 잉, 돌아볼래요?”

남자는 해람에게 내밀었던 오징어를 자신의 입에 가져갔다. 오징어를 삐딱하게 입에 물고 질겅거리는 남자는 흔들의자에 깊숙이 앉아 거들먹대는 태도로 해람을 향해 손짓을 했다. 해람이 일어서서 한 바퀴 비 잉, 돌자 남자는 요리조리 뜯어가며 관찰했다.

“그래, 그래 아주 좋아요. 그런데 해람씨는 일반 주점에 가긴 너무 아까워, 음 그렇고 말

구,”

흡족한 듯 혼잣말을 씨부렁거리던 남자는 수첩을 뒤적이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음, 일반주점으로 보네긴 아까운 상품이 하나 들어 왔는데 빈자리 좀 있나,”

“.”

“어 그래? 아하 그럼 어쩐다! 일반주점으로 가긴 영 아까운데.”

남자는 또 다른 곳에 전화를 했다.

“어떻게 한자리 만들어봐! 정말 아까운 물건이야,”

해람은 그 소리에 살짝 빈정이 상했지만 그래도 이왕 여기까지 온 거 끝을 봐야겠다고 생

각하고 조용히 남자의 행동을 주시했다.

“응, 응 그래, 그래 보낼 테니 한번 보라고 .오케이~”

여러 군데를 전화한 남자가 유쾌하게 전화를 끊고 여자들과 함께 해람을 봉고 차에 태웠다. 도심엔 이미 어둠이 내려앉았다. 눈을 감았다. 선명한 네온의 물결이 눈앞에서 춤을 춘다.

“자격증을 따야해, 그래야 취직도 쉽고 힘들지 않게 사무직으로 일을 하지, 학원 열심히

다니고 있지?”

오늘도 자격증 타령이다. 대학진학은 아예 글렀나보다. 아버지의 그 소리가 너무도 싫다. 대학을 진학하고 싶은 해람의 마음은 아랑 곳 없이 아버지 마음에 대학을 보내줄 맘은 조금도 없는가보다. 먹기 싫은 아침을 마다하고 늦었다는 핑계로 집을 나섰다. 저만치 소로미가 앞서 가는 게 보였다.

“같이 가자, 소롬아!”

소로미가 발길을 멈추고 돌아다 봤다. 소롬이의 교복은 너무 꼭 맞아 엉덩이가 터질듯이 탱탱하고 가슴은 금방이라도 셔츠 밖으로 비집고 나올 것 같다.

“일찍 왔네, 오늘,”

“응, 아버지가 대학은 안 보내 주려고 자꾸만 자격증 타령만해서 졸라 열 받아서 아침밥

안 먹고 왔어,”

“너 두 그러니? 나 두 그른 것 같아,”

“대학도 안 갈 건데, 공부는 열라 해 뭐하게,”

“그러게 오늘 우리 땡땡이칠까?”

소롬의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우리 집에 할머니 밖에 안 계셔 가서 머리 염색이나 할까? 요즘 브라운색이 대세잖아, 그 머리색 졸라 예뻐”

“야아! 그래도 그렇지, 그 머리로 어떻게 학교에 다닐 라구?”

“바보야! 오늘만 놀고 다시 검은색으로 염색하고 학교에 감되지. 야! 너 돈 얼마

있어?”

“응, 어제 이달 용돈 받았지,”

“그래, 그럼 됐다. 나한테 있는 거랑 흙색과 붉은 색으로 사면되겠다. 졸라 신난다. 쿡쿡.”

소로미는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이 신이 나서 웃었다

작은 방문을 열어보니 귀가 어두운 소로미의 할머니는 손녀딸이 학교에서 되돌아 온 줄도 모르고 잠들어 있다. 부모 안 계신 할머니랑 둘이 살고 있었다. 욕실은 언제 청소를 했는지 구석구석 찌든 때가 끼어 있었다. 둘러보던 해람의 눈살이 찌푸려지고 소롬이 염색약을 능숙한 솜씨로 배합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해람이 머리에 비닐을 뒤집어 쓴 체 비누를 칠해 말끔하게 닦아 놓자 욕실은 깨끗하고 상쾌해졌다.

“야! 졸라 깨끗하다. 너 청소 짱이다,”

반짝대는 욕실을 들여다보는 소롬의 뒷덜미를 누군가 잡았다. 돌아보니 담임선생님이다. 서슬 퍼런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저승사자라도 본 듯이 화들짝 놀란 소롬이 얼떨결에 선생님을 밀치고 달아났다. 소롬을 놓쳐버린 담임은 해람의 뒷덜미를 잡았다. 너 만은 놓칠 수 없다는 듯이 손아귀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선생님, 머리는 감고 가게요, 놓아 주세요”

“안 돼! 요 녀석,”

해람의 사정에도 담임은 굴하지 않았다. 그대로 학교까지 끌려간 해람은 반 친구들 앞에 섰다. 머리에 염색약을 발라 비닐을 뒤집어쓴 해람의 꼴을 보고 여기저기에서 키득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아이들 앞에서 톡톡히 망신을 산 해람은 수업시간 내내 복도에서 벌을 서야했다.

“해람이 너 이 녀석, 뭔 짓을 한 거야?”

지나가는 선생님들이 출석부해람의 머리를 툭툭 치고는 웃고 갔다. 휴식시간 종이 울리고 해람은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미용실로 갔다. 검은색으로 염색을 하고 찰랑대던 이쁜 머리를 짧게 싹둑 잘려버렸다. ‘에이 머릿결 다 상해 버렸잖아,’ 해람은 달아난 소롬이 걱정이 됐다. 다음날이면 돌아오겠지 기다렸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해람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몇 개의 자격증을 따 놓고 힘들지 않게 대학생활을 마친 해람은 그래도 서비스업이 취직하기도 쉽고 월급도 많아서 그 쪽으로 선택했다.A백화점에 취직한 해람의 똑 부러지는 화법(話法)과 날이 갈수록 뛰어난 미모는 여지없이 그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터득하는 서비스기법과 전산 일을 도맡아 처리하면서 남보다 빠른 발 돋음을 하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해람은 사원 장끼자랑에 나가면 인기상을 도맡아 오고는 하였다. 어느 날 둘째로 일하던 애진이 눈 여겨 보아 오던 해람을 불러 앉혔다.

“해람아, 언니 따라 갈래? 언니가 메니져로 가는데 네가 함께 가면 둘째로 진급 시켜 줄

께…….”

“정말요?”

"응 괜찮은 브랜드인데 너랑 함께 하면 잘 해 낼 것 같아 나 좀 도와줘 해람아,"

모든 면에서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해람은 입사 3년 만에 전국에서 최연소 둘째 자리까지 차

지하는 행운을 안았지만 남보다 이른 나이에 둘째 자리에 있기란 그렇게 녹녹하지 만은 않

있다. 조금 이른 나이에 매니저를 단 애진과 최연소 나이에 둘째를 꿰어 찬 해람을 보는 주

위의 시선들이 곱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두 사람은 새로 입점한 백화점에서 왕따가 되고 있었다. 해람의 뛰어난 외모와 애진의 똑 떨어지는 상술은 사람들로 하여금 시기와 질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B백화점 총괄 매니저는 특히 해람을 시기 질투하여 못살게 굴었다.

“해람씨는 직원 화장실을 아래층에서 사용하세요, 영수증 발급도 아래층 계산대에서 하

도록 하세요,

“매니저님, 그건 왜 그렇게 해야 하는데요, 바쁜데 언제 아래층까지 가라고 하나요?”

“뛰던지 날던지 알아서 하고 그렇게 하세요,”

“그래, 네가 원하면 그렇게 해 주지, 못생긴 아줌마 같으니라고 .”

또각또각, 굽 높은 힐을 신고 해람은 이를 악물고 뛰고 또 뛰었다. 삼층에서 이층으로 이층에서 지하 창고로. 계단에서 구르기도 일수다.

“해람아 네 다리에 또 멍들었네, 이런, 또 넘어 진 게야,”

“네, 계단에서 굴렀어요,”

“조심해라, 위험해서 항상 정신 차리고 다녀야지,”

“네, 이젠 넘어지는 것도 기술적으로 넘어져요, 자꾸 넘어지다 보니 그것도 느네요, 호호호”

말은 그렇게 하지만 온몸이 욱신욱신 쑤시는 해람은 다리에 든 멍 자국을 애진 몰래 어루만졌다. 자신의 몸무게 보다 더 나가는 박스를 들고 밀고, 깡다구니로 버티고 있었다.

“악!”

해람이 실수로 인해 볼펜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내리 꽂았다. 뚫어진 스타킹 사이로 붉은 선혈이 흘러내렸다. 소독을 하고 밴드를 붙이는데 손님이 다가온다. 미처 붙이지도 못한 상처부위를 툭툭 다독이며 해람이 일어섰다.

“해람아, 신경 쓰지 말고 좀 쉬어. 저 손님 옷 사러 온 거 아니야, 그저 갈 때는 없고 집에

있자니 심심하구 이리 저리 눈요기 하는 사람이야,”

“그러네, 언니 왜 비오는 날은 장사도 안 되고 진상손님은 또 그리 많을까?”

“아서, 아서 그냥 스치고 지나가.ㅋㅋㅋ”

노래를 흥얼대는 해람의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역시나 손님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삼십분이나 해람의 시간을 빼앗고는 빈손으로 돌아갔다. 지쳐 돌아서는데 한 여인이 풋풋한 아가씨 하나를 데리고 들어온다.

“엄마, 여기 비싼 곳이야, 나가자”

여인의 손에 이끌려 들어온 아가씨는 재빠르게 가격표를 보더니 귓속말을 하며 슬쩍 여인을 잡아끈다.

“괜찮아, 여기 옷이 좋고 예뻐, 오늘은 엄마가 맘먹고 들어온 거니까 골라봐, 이거 어떠

니?”

여인은 꽤나 값이 나가는 원피스를 그녀에게 권했다. 그녀는 내심 좋은 듯 보이나 여전

히 옷값이 문제인 듯 선뜻 입어보지를 못한다. 여인에게 등 떠밀려 들어간 그녀가 옷을 갈

아 입고 나오자 정말 잘 어울린다. 이것저것 살뜰하게 골라본 여인이 결국은 처음 입어본

원피스를 선택했다. 여인이 카드로 3개월을 결재하자, 그녀의 얼굴이 걱정으로 일그러졌다.

“엄마, 이것 엄마 월급 반액이야 안 돼요. 너무 비싸,”

“괜찮아, 우리 딸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 한 거야, 조금씩 나누어서 갚으면 돼,”

조용히 웃으며 나지막하게 말하는 여인의 차림새는 노점상에서나 파는 옷들 이었다. 그런 여인을 해람은 얼른 관찰해 보았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해봐야 십 만원 안쪽도 훨씬 못 미칠 듯 했다. 그런 여인이 딸을 위해 자신의 월급 반이나 되는 값을 지불하고 웃을 구입한 모녀가 행복한 얼굴로 돌아갔다.

“비록 자신은 노점 옷을 입지만 말이야, 월급의 반이나 지출했지만 여자의 얼굴 좀 봐라 얼마나 행복해하니! 그런 게 엄마 마음일거야, 그렇지?”

“그러게요, 나보다 자식을 더 잘 입히고 싶고 먹이고 싶은 .참 아름다운 모습이에요”

애진과 해람의 담소를 깨고 불쑥 낯익은 얼굴이 들어온다.

“자갸 잘 있었어?”

“네, 어머나 고객님, 어서 오세요”

애진이 온갖 호들갑을 떨며 자신의 단골고객을 응대했다. 해람은 전산 처리를 하느라 머리가 복잡하다. 가뜩이나 정신이 없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해람아, 나 어떻게 해?”

소로미다. 무슨 일인지 목소리는 몹시 급한 듯 허둥댔다.

“왜 무슨 일인데?”

전화상 감이 멀게 느껴진다.

“잘못 온 거 같아, 더 좋은 곳으로 보네 준다고 해서 왔는데 아니야, 배 타고 들어왔어, 낯선 섬인데 어딘지 모르겠어, 여긴 있을 곳이 못 되는 것 같아 어쩌면 좋아,”

“이런, 그럼 못 있겠으니 보네 달라고 해야지,”

“소용없어, 사람들이 감시하고 맘대로 나다니지도 못해, 간신히 동전만 들고 빠져나와 전화

하는 거야,”

소로미가 다급하게 말을 이어갔다.

“어떻게 그런 일이……. 좀 잘 알아보고 가지 그렇게 덜컥 따라가서 어쩌자고.”

“아, 몰라 몰라 아 누가 이럴 줄 알았냐고 어떻게 해? 동전 다 댓…….뚜뚜뚜.”

미처 소로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는 끊겨 버렸다. 전화를 끊은 해람은 정신이 아찔하

다. 자신에게 구원을 요청하고 있는 소로미, 동동대며 공중전화기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댄다. 어떻게 데려오지? 곰곰이 생각하는데. 애진이 까르르 숨이 넘어갈듯

웃어 재킨다. 그 소리에 놀라 돌아보니 아까의 고객을 여직 응대하고 있다.

“해람씨 우리 자장면 시켜 먹을까? 오늘은 내가 살께.”

“아, 네 .^^ ”

해람이 얼굴에 급 화색을 띠며 맞장구를 친다. 어떻게 하나, 어떻게…….해람은 자장면을 넘

기면서도 소로미의 생각뿐이다.

“아,바로 그거다,”

“왜, 먼일이야?”

“어 언니, 잠간만 ,나중에, 나중에 말해 줄게요,”

애진이 쳐다보자 해람은 대충 대답하고는 전화기를 휴게실로 나왔다. 해람은 소롬이 다른 곳으로 가기 전에 잠시 들러서 건네준 전화번호가 생각났다.

“여보세요~”

“저, 추억여행이지요?”

“네, 그렇습니다만.”

“거기서 일하던 소로미 아시죠?”

“소로미요? 그런 사람 모릅니다.~”

전화가 끊겼다. 의도적으로 피한다는 생각이 든 해람은 문자를 보냈다.

“소로미가 그곳에서 일한 것 알고 있습니다. 지방으로 내려간다고 왔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아서 소로미를 찾으려 합니다. 도와주십시오. 소로미의 언니입니다. “

그래도 소식이 없다. 해람은 다 시 한번 문자를 보냈다.

“소로미가 간 곳을 사장님이 알고 있다는 것 다 압니다. 도와주시지 않으면 사장님도

함께 한 공모자로 간주하고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소로미가 분명히 사장님이 소개해 준 곳으로 간다고 나에게 말 했거든요. “

문자가 먹혔나보다. 추억여행 사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정말 언니 되십니까?”

“그렇습니다. 그 아이가 철이 없어서 집을 나가 그러고 다닙니다. 그러니 사장님이 꼭

좀 도와주십시오. “

해람의 말을 듣자 주점 사장은 가슴이 뜨끔했다. 그냥 우겨서 넘어갈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요, 그럼 좀 기다려보세요, 제가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찾아보도록 하지요.”

추억여행 사장은 이틀 후에나 연락이 왔다.

“수소문 해보니 소로미가 멀리 섬으로 들어가 있더군요, 찾아내느라 애 많이 썼습니다.”

“아 네, 그럼 지금은 어디에 있나요?”

“지금 우리 가게에 데려다 놓았으니 데려 가면 되겠습니다. 언제 오시겠습니까?”

“네, 저녁에 퇴근하고 당장 가겠습니다. 그때 까지만 잘 좀 부탁합니다.”

해람은 애진에게 모든 사실을 이야기하고 배려를 구하고 서둘러 일을 마감했다. 자신이 가

는 곳과 전화번호를 애진에게 알려주었다.

“언니, 그러니까 내가 만일 열시가 넘어도 안 오면 이번호로 일단 전화부터 해줘,”

“응, 그러면 되는 거야? 야아 그러다 너까지 그들 손에 걸려들면 어쩌니 경찰을 데리고 가는 게 어떨까 아니면 내가 같이 갈까?”

“아니야 언니, 그들도 우릴 어쩌지 못 할 거야, 내가 거기 간 사실을 아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 텐데 뭘 어쩌겠어,”

“그래, 그렇구나! 그건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어쨌거나 조심해야 한다. 그들은 아주 질이 나쁜 사람들 같다,”

걱정하는 애진을 뒤로하고 샵을 나서는 해람은 마음이 조금 불안하다. 초행길, 택시를 타고 갈까 생각 하다가. 해람은 지하철을 선택했다. 생각보다 한산했다. 종일토록 서 있던 피곤한 몸을 의자에 앉히니 불안과 초초함이 엇갈리는 마음에도 솔솔 잠이 온다. 역을 지나칠까봐, 해람은 미나리동에 도착할 시간을 설정해 알람을 해 두고 눈을 감았다.

소로미의 손을 잡고 해람은 사 정 없이 뛰었다. 저만치 따라오는 낯선 남자들이 두 사람을 쫓아오고 있었다. 숨을 헐떡이며 정신없이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소로미가 해람의 앞을 가로 막았다.

“왜 그래? 소롬아! 어서 가야해 저들에게 잡히면 끝장이란 말야,”

소로미는 갑자기 해람의 머리채를 확 잡아끈다.

“너 요즘 잘 나간다며? 나는 이렇게 고생을 하는데 너를 그렇게 잘나가게 놔 둘 수는 없

다. 나와 함께 가자.”

해람은 끌려가며 소로미를 설득하려 했으나 소로미의 손아귀에 힘이 더욱 거세게 가해지고

있다.

“야! 소롬아 이것 놔 왜 이러는 거야, 우리 어서 달아 나야해!”

남자들은 이미 해람의 앞에 와 섰다. 야릇한 웃음을 한번 짓던 소롬이 해람의 잡은 머리채

를 휙 남자들에게로 밀쳤다. 해람이 몸집이 거대한 남자의 가슴팍에 냅다 꼬꾸라졌다.

남자는 묘한 웃음을 짓고 내려다보고. 소롬의 손에는 해람의 머리카락이 수북하게

뽑혀 있다. 뜻밖의 상황에 황당한 해람이 겁에 질린 얼굴로 소롬이를 보자 통쾌하다는 듯

큰소리로 웃어 재키더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소로미의 노래 소리가 점점 멀어지다가

다시 크게 들렸다. 깜짝 놀라 화들짝 눈을 떴다. 해람의 핸드폰에서 울리는 알람소리였다. 미나리동에 곧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들렸다. 휴~해람이 다행스런 한숨을 내쉬었다. 미나리동 4번 출구를 빠져 나와 추억사장이 불러준 약도를 따라 갔다. 추억여행은 금세 해람의 눈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은 어둠이 채 내리는 않은 시간이라 주점 안은 조용해 보였다. 해람은 지하철에서

잠시 잠든 사이 꾼 꿈이 떠올라 마음에 불안감이 가중된다. 문을 열려던 해람이 잠시 주춤

했다 지금이라도 경찰에 도움을 받을까! 혼자 들어갔다가 함께 잡혀 버리면 어쩌지, 에이 뭐, 지들이 어쩔 거야, 내가 여기 온 것을 아는 사람이 있는데……. 해람은 살며시 주점의 문을 밀었다. 미끄러지듯이 조용히 문이 열린 주점의 내부는 어두웠다. 보통 주점을 생각했던 해람에게 그곳은 너무도 다른 시설이었다. 가운데 통로하나 남겨두고 모두 칸막이로 막혀있다. 양쪽으로 늘어선 룸이 보이지 않도록 커튼으로 가려져 있는 게 아닌가. 쭉 통로를 따라 들어갔다. 왠지 기분이 나쁘다 머리도 쭈뼛 거리는 게 소름이 돋는다. 낯익은 노랫소리만이 조용히 흐르고 있다.

“저, 아무도 안계세요?”

해람은 마음을 가다듬고 용기를 내어 씩씩하게 주인을 불렀다. 해람의 목소리는 조용한 통

로를 휘돌아 주점 안을 조심스럽게 울렸다. 룸의 커튼 하나가 열리더니 여자 하나가 나온

다.

“누구세요?”

껌인지 오징어인지 질겅대는 그녀는 팔짱을 낀 체 해람을 위아래로 흩어 보다가,

“아하, 저기 사다리 보이죠, 거기로 올라가요,”

턱으로 가리키며 한마디 던져 놓고는 다시 커튼 뒤로 사라졌다. 별로 넓지도 안은 곳이었지

만 해람에게는 사다리까지 가는 길이 엄청 멀게 느껴진다. 급경사 사다리는 올라가기도 힘들었다. 한 칸 한 칸 조심스럽게 올라간 곳은 이층도 아닌 다락방이었다. 그곳에는 여러 명의 여자들이 둘러앉아 화투장을 들고 키득대고 있었다.

“실례 합니다.”

해람이 고개를 쏙 올려 빼고 아가씨들을 향해 말을 하자 일제히 시선이 왔다.

“아, 죠기,”

해람을 위아래로 힐긋거리던 여자가 짧은 말과 턱으로 저만치 있는 남자를 가리켰다.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은 해람은 성큼성큼 남자 앞으로 갔다.

“안녕하세요?”

“아, 아가씨가 소로미 언니요?”

산달에 가까운 여인네처럼 불룩한 배를 안고 앉아있는 남자가 패를 띠던 화투장을 손에 든체 해람을 올려다봤다.

“네, 그렇습니다. 소로미는 어디 있나요?”

“저쪽 방에 있소,”

남자가 가리킨 쪽방엔 소롬이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아니, 언니 나이도 많아 보이지도 않구만 어쩜 그렇게 다르요? 저 녀석, 찾느라 애 먹었

소, 내게서 나가서 두 어 사람 거쳐서 팔려 간 것을 경찰에 신고하겠노라고 엄포까지 놓으

면서 데려 왔소, 아주 먼 섬에 가 있더군요, 아무튼 이렇게 찾아서 다행이요, 소로미 데리고

가소, 다시는 이런 곳에 오지 않도록 언니가 잘 보살펴 주시오“

남자는 손에든 화투장을 힘주어 내리쳤다. 딱! 다시는 떨어지지 않을 듯이 야무진 소리를 내며 화투장이 다른 화투장위로 떨어졌다.

“네, 사장님 감사합니다.”

소롬이 해람을 보자 그제야 배시시 미안하고 반가운 웃음이 돈다. 고맙다는 인사를 다시 한 번 남기고 서둘러 주점을 빠져 나온 해람은 택시를 타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주점을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택시가 와서 선다. 그뿐인가, 기사는 싱긋이 미소까지 건네며 그들에게 타라고 하였다. 다행이다 싶어 택시에 올라앉은 해람의 머리를 불안한 생각들이 어지럽혔다.

‘도로 거미줄에 걸린 것 아닐까, 기사 아저씨가 수상해, 어쩜 그렇게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

앞에 차를 댈까, 친절한 웃음도 그렇고,설마, 아닐 거야, 에효~ 내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봐, ‘

해람은 불안한 마음을 달래며 기사를 믿어 보기로 했다. 택시는 안전하게 해람과 소로미를

목적지에 내려 주고는 또다시 친절한 웃음을 놓고는 사라졌다. 그렇게 이삼일 해람의 집에

머물던 소롬이 집으로 간다고 돌아갔다.

“오랜만에요 고객님,^^”

그녀는 해람에겐 아주 고마운 vip 단골고객이다. 일주일에 두어 번은 찾아온다. 한 번 오면

적어도 이삼백씩 긁고 간다.

여자의 목소리엔 만사가 귀찮다는 듯 생기가 없다. 웃고 있으나 죽지 못해 사는 인상이다

“뭐 새로운 상품 좀 들어왔나, 뭐가 좋을지 코디 좀 해봐, 이쁜 자갸,”

해람에게 한마디 던진 그녀는 의상엔 관심도 없이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다. 애진이 김이나

는 커피한잔을 권하자 그녀는 심드렁한 얼굴로 홀짝대고 있다.

“왜요? 사모님 사는 게 재미없으세요?”

애진이 웃으며 그녀에게 슬쩍 말을 붙인다.

“그렇지 머, 사는 게 뭐 특별하게 재미있는 게 있으려나, 그날이 그날이고 그날이 그날인

걸,”

“고객님, 기분전환이 필요하신 것 같아서 오늘은 좀 화사하게 코디를 해 봤어요, 맘에 드시

려나요?”

“됐어, 아무렴 어때, 자기가 알아서 오죽이나 잘 했겠지,”

해람이 머플러부터 신발까지 코디한 의상을 가져다주자 여자는 남의 일인 양 무관심하게

옆으로 밀어둔다. 아무것도 아쉬울 게 없어 보이는, 부족한 것도 없어 보이는 여자는 늘 얼

굴에 무엇인가 그늘을 갖고 있다. 고운 옷을 봐도 고운 줄 모르고 좋은 가방을 들고도 좋은

줄을 모르는 듯 보인다. 그저 돈쓰는 재미라도 웃을 만한데 그것도 아닌 듯, 할 일 없고

남아도는 돈을 쓰러 나오는 듯하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여자에게서 이미 멀리 있는 것 같

다. 여자가 긁은 대금은 오늘도 삼백만원을 웃돌았다. 쇼핑백을 주렁주렁 들고 여자가 돌아가자 애진이 안쓰러운 듯 혀를 찬다.

“돈이 많으니 모하나, 마음이 허 한걸,이쁜옷을 걸치면 뭐하나 전혀 행복하지가 않은걸,

에효~저 고객님도 참 안됐어,”

“그러게 언니, 재물이 많다고 다 행복한 건 아닌가봐,”

“그래, 옛 말에 이르기를 만석꾼은 만 가지 근심이 있다 잖니?”

“남편은 사업상 밖으로 돌고 아이들은 다 커서 지들 갈 길 가고, 돈 쓰는 재미도 한 두 번이지,”

“그나저나 해람이 너 총괄매니저님한테 뭐 잡힌 거 있니?”

“아니, 별일 없었는데.”

“그 노친네가 너한테 왜 자꾸 태클을 거는지 모르겠네,”

“냅둬요, 언니, 그러다 말겠지 모.” ‘

“그러게나 말이다, 노친네가 아무래도 네 미모에 시기 질투 하는 것 같아,”

‘아니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산다는데 지들이 왜 그러는 건데.’

해람은 그런 그들이 이해되지 않는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자, 손님도 없을 것 같다.”

애진이 슬슬 마무리를 시작했다.

어느 날 부턴 가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러다 말겠지 해람은 별스럽지 않게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넘겨 버렸다. 날이 갈수록 웃음이 사라지고 말수가 줄었다. 몸과 마음이 지쳐있는 해람을 보며 애진은 일에 지쳤나보다 생각하고 며칠 쉬라고 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지친 듯 한 해람은 애진의 말대로 며칠 휴식을 갖기로 했다.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보내던 해람이 소롬이를 떠올렸다. 여전히 소로미는 주점에 나가고 있었다.

“거기를 꼭 나가야 되는 거니?”

“그런 말마라, 내가 배운 게 이건데 어디 취직할 곳도 없고 그래도 짭짤하단다. 내가 어

디 가서 이만큼 벌겠니?”

“그러니? 그래도 몸 상하는 것을 생각해야지, 몸조심해라, 술 너무 많이 먹지 말고,”

“그래, 심심하믄 한번 만나자. 내가 좋은 곳에서 술살께 해람아,”

소롬이 유쾌하게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하긴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소롬이 이제 와서 할일이 뭐 있을까 싶기도 하다.

또각또각, 해람의 발자국소리가 아스팔트 위 정적을 깬다. 이미 소로미는 약속장소에 도착해 있다.

“자 나가자, 내가 좋은 곳에 데려 간다고 했지?”

“어딜 가는데 앉지도 않고 일어나게 하는 거야?”

“호호호, 기대해라, 따라와 봐,”

소롬은 잔뜩 장난기 어린 웃음을 웃었다. 앞서 가는 소롬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이 해람의

팔장을 끼고 잡아끈다. 총총 앞서가던 소롬이 발길을 멈추었다.

“다 왔다, 여기야!”

“여긴 어디니?”

“궁금하지? 호호 기대해도 좋다고 했지 자, 이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부터는 너도 나도 문

밖에 두고 오직 순간순간만 즐기면 되는 거야, 자, 어서 들어와, “

외관으로 보기에는 별것 없어 보인다. 다른 곳과 다르게 유리가 아니라서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 뿐. 열린 문으로 들어가니 밖에서 보기보다 훨씬 넓어 보였다. 스스럼없이 들어가는 소로미는 한두 번 온 솜씨가 아닌 것 같았다.너무나 자연스러운 태도에 해람은 적잖이 놀랐다.

“누나, 오랜만이네, 왜 그렇게 발길이 뜸했던 거야, 바빴어?”

“그래, 좀 바빴어. 쨔샤 잘 있었어?”

소롬이 남자에 어깨를 툭 쳤다.

“응, 그런데 이 누난 처음보네, 와아 정말 이쁘다, 짱이야!”

“쨔식 이쁜 건 알아가지고, 눈독 들이지마, 오늘 이 누나 잘 모셔야해,”

소롬이 팔꿈치로 남자에 옆구리를 쿡 찔렀다. 남자라고 하기엔 너무 어리고 소년이라고 하기엔 노숙하였다. 얼굴이 해사한 남자는 룸으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이런 곳도 있구나, 여긴 뭐하는 곳이야?”

남자의 안내를 받으며 자리에 앉는 해람이 주위를 둘러본다. 밖에서 보기보단 너무나 잘 꾸

며져 있다. 소롬이는 남자를 함부로 대했다. 너무 한다 싶을 정도를 심한 장난을 치자 해람이 소롬의 행동을 저지한다.

“야! 해람아 니가 몰라서 그래, 제네 들은 더해, 내가 얼마나 쟤들한테 당하고 사는지 아

니? 이렇게라도 갚아야지,”

소롬이 그동안 받아온 설움들을 되갚아 주기라도 할 듯이 앙 다문 입을 실룩댔다.

“그렇다고 똑 같이 노니?”

“아니야, 잘 봐,”

소롬은 수박씨를 얼굴을 쳐들고 훅하고 불었다. 공중으로 튀어 오른 수박씨는 소롬의 가슴팍으로 떨어졌다. 재킷을 벗어버린 소름의 셔츠는 목선이 깊이 파여 봉긋한 젓 가슴이 곧 튀어나올듯하다.

“야! 이것 떼여,”

남자가 슬그머니 소롬의 앞가슴으로 손을 뻗혔다.

“쨔샤. 그것 말구 입으로 떼어”

소롬이 가슴팍을 불숙 내밀고 남자는 수박씨를 입으로 떼려 소롬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쨔샤, 수박씨 떼랬지 누가 침 발라 놓으랬어? 더러워 죽겠네 이씨,”

소롬이 남자의 머리를 밀쳤다. 고개를 든 남자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야! 왜 그래? 그만 나가자.”

소롬의 행동이 너무하다 싶고 남자에게 미안한 해람이 소롬을 잡아끌었다. 기분 좋게 취한 소롬이 아쉬움이 남은 듯, 주점을 나와서도 노래를 흥얼거렸다.

“자, 다 왔습니다.”

해람은 기사 목소리에 눈을 떴다. 완연한 어둠속에 도심은 눈이 부시다. 여자들이 제각기 가방을 챙겨들고 내렸다. 해람은 후다닥 정신을 차리고 차안을 빠져 나왔다.

“야! 여기 연예인도 나오는 주점이래에~”

뒤따라 내리는 여자가 해람의 귀에 대고 귓속말을 한다.

‘지가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해람은 빈정이 상했지만 그러려니 넘겼다. 주점 안으로 들어가자 기사는 여자들을 대기실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여자들이 와 있었다. 낯선 곳에서 조금 불안하기도 했지만 해람은 침착하게 그들 틈에 한자리 잡고 앉았다. 여자가 해람의 귀에 대고 또 속닥거렸다.

“여기 연예인 인숙이도 나온다 잔여,”

“인숙이가 누구?”

“아, 있잖아, 열 아들 안 부럽다 에 나온 아역배우,”

“아, 그래?”

“조용히 해라 매니저 듣는다,”

옆에 여자가 낮은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씨발년, 이차 졸라 나가!”

저만치 앉아있는 매니저가 수첩을 들여다보며 혼잣말처럼 투덜거렸다. 여자가 매니저의 궁시렁을 알아차렸다.

“그년 말이야 인숙이, 하룻밤에 몇 번씩 나간다니까.”

여자가 호들갑을 떨었다.

“그럼 돈은 잘 벌겠네?

“이삼백은 그저 번다잖여, 야야, 떴다 떴어, 인숙이다.”

여자가 어깨로 해람을 쿡 치고 턱으로 가리키는 문 쪽을 보니 성형으로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그녀가 맞았다. 어렴풋이 남아있는 얼굴은 옛날 귀엽던 아역배우 인숙이다. 어느새 성숙한 여인이 되어 있었다. 여기저기서 수군거렸다. 힐긋힐긋 그녀를 향한 눈초리들이 바쁘다. 남들이 수군대던 말 던 아랑곳없이 그녀는 한쪽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근데, 넌 어디서 일하다 온 거야? 처음 보는데, 어째 이 바닥 물이 안 들어 보인다.”

꽤나 불량해 보이는 여자가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꼰 채 해람의 위아래를 흩어보며 눈을 내리 깔았다.

“응, 나 처음인데.”

해람이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턱 마저 치켜세운 체 당당하게 대답했다.

“이런, 우라질 바닥부터 뒹굴다 와야지 누가 여기부터 오래? 건방진 피라미 같으니 라구,”

해람이 처음인걸 알자 그녀는 몹시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그때 대기실 문이 열리더니 위풍당당 한사람이 들어온다.

“야! 떴다…….”

여자가 귓속말을 급하게 하며 여자가 해람을 툭 쳤다.

“누군데?”

“저 남자, 이 바닥에선 알아주는 봉이야 봉,

“봉?”

“응, 저 남자 눈에 들면 이 짓거리 안 해도 되는데.”

“그래! 그렇단 말이지?”

해람은 그 남자를 유심하게 보았다. 순간 많은 여우를 잡아먹은 피둥피둥 살이 찐 늑대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여자들을 비잉 둘러보았다.

“자, 오늘은 누구랑 놀아볼까?”

그 남자는 맛있는 먹이 앞에서 입맛 다시는 늑대의 군침처럼 대기실의 공기를 축축하고 끈적거리게 만들며 둘러본다.

“저요, 저랑 마셔요 술,”

해람이 얼른 손을 들었다. 그는 그런 해람이 깜찍해 보였는지 쳐다보며 씨익, 웃더니 사장을 불렀다.

“어이구 박 사장님 오셨습니까?”

“어, 이사장 장사는 잘 되고? 술상 좀 봐 주시오 오늘은 이 아가씨랑 좀 놀아보게,”

“아, 예 오늘 처음 온 아가씨인데요.

“그러게!! 그런데 당돌하게도 나랑 놀고 싶다네, 하하”

어이없이 피라미에게 봉을 뺏겨버린 여인들이 멍한 눈초리를 받으며 해람은 박 사장을 따라 갔다.

깊숙이 자리한 룸에 술자리가 마련되고 박 사장을 만나러온 손님이 들어왔다. 그들은 열심히 토론을 벌인다. 해람에게 술을 먹으라고 권하지도 않고 요구 하는 것도 없다. 그저 옆에서 조용히 빈 잔에 술이나 따르면 되는 것이었다.

‘뭐야, 소로미 말대로 라면 지금쯤 저들이 무슨 짓인가를 해야만 하는 것 아닌가,’

해람은 소롬에게서 들은 이야기와 너무나 다른 것에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조용한 시간이 흘러가고 그들은 이야기가 끝이 난 듯 손님을 보낸 박 사장은 해람의 전화번호를 요구했다. 그리곤 해람을 택시를 잡아주고 삼 십 만원이나 손에 쥐어 준다. 뭔가 다른 쇼킹한 경험을 하고 싶었던 해람은 조금은 실망스런 마음으로 돌아왔다. 이틀쯤 후 박 사장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한번쯤 만났으면 한다는 것이다. 해람은 거절할까 하다가 호기심이 생겼다. 어차피 놀고 있는 시간 무료함도 한몫했다. 약속장소에 박 사장은 이미 와 있었다. 그는 처음 본 날과는 사뭇 달랐다. 싱싱한 회가 나오자 손수 와사비를 넣어 회간장도 만들어 주었다. 보기보단 자상한 면도 있는듯했다.

“술도 한잔 하나?”

“네, 잘 못하는데요, 한잔 정도는 합니다.”

“그래? 그럼 그냥 받아만 놓지,”

박 사장은 따라 주겠다는 해람의 손길을 거절하고 자신의 잔에 술을 채워 마셨다.

“해람이라고 했나,”

두어 잔 들어간 술이 박 사장의 얼굴을 발그레 물들였다.

“네,”

“해람이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나이고 하니 내가 돌려 말하지 않을게,”

“무슨 말씀이신지 .”

“내가 해람의 스폰이 되고 싶은데.”

“무슨?”

“우리 6개월만 연애하자구, 해람이 백화점에서 받는 것 3배는 내가 보장해 줄 것이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뒷바라지 해줄 테니 하라구, 6개월을 전재로 시작해서 그때 가서 어느 한쪽이 싫으면 그만 두고 괜찮으면 더 해도 되고 어떤가? 강요는 아니야 생각해 보고 말해주면 되”

박 사장과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빈들의 마른풀잎처럼 해람은 흔들리고 있었다. 눈 딱 감고 그의 제안을 받아 드릴 것인가, 아니면 바람의 유혹으로 넘겨 버릴 것 인가, 시간은 해람의 결정을 재촉하듯 점점 더 빨리 가고 있었다.

“그럼 이렇게 하지, 삼일을 시간을 줄 테니까, 생각이 있으면 그때 여기 이 호텔로 오는 거

야, 난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

해람의 손에 놓여있는 작은 메모 한 장, 어쩜 기회일지도 모르는, 놓쳐 버리기엔 아깝고 잡기엔 무모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일단 가면서 생각해 보자고 결정을 내린 해람은 급히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약속된 호텔 앞 택시에서 내리는 해람의 옆에 고급 승용차 한 대가 선다. 기사가 내리더니 뒷 자석에 문을 열어주고 머리가 허면 중년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뒤따라 내린 앳된 아가씨, 해람은 그녀의 차림새를 빠르게 계산해 보았다. 명품가방과 의상 구두는 얼른 잡아도 천만 원은 웃돌아 보인다. 팔짱을 끼고 앞서가는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가는데 지나가는 여인들의 수군거림이 들린다.

“미친년, 어린나이에 명품이 머라고”

“그러게, 제 몸에 두른 것 좀 봐, 얼핏 봐도 액수가 장난 아니다.”

해람의 뒤통수가 뜨끈 거렸다.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자신을 향해 하는 말인 것 같다. 두 사람과 해람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여자는 해람보다도 몇 살 아래도 보이는 정말 풋풋한 여자였다. 해람이 도착한 객실 옆에 그들이 멈춰 섰다.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여자가 해람을 힐긋 쳐다보곤 문 뒤로 사라졌다. 해람은 시계를 보았다. 약속시간 오 분 전이다. 해람은 털썩 벽에 몸을 기대섰다. 복도 천장에는 현란한 색의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째깍째깍 오 분은 참 길었다. 해람은 운에 결정을 맡겨 보기로 했다.

똑똑, 해람이 두드리는 노크소리가 조심스럽게 복도에 울렸다. 동시에 몸과 마음이 얼음처럼 굳어있는 해람을 깨우듯 진동이 울렸다.

“아, 엄마!”

전화번호를 보는 순간 해람은 망설임 없이 그곳을 떠났다. 손안에서 느껴지는 엄마 목소리…….

“엄마! 전화했네..”

해람의 목소리는 하늘빛만큼이나 맑고 푸르렀다.

 

“장 매니저 오랜만이야, 장사 잘 되지?”

넉넉한 웃음으로 들어서는 박 사장 옆에는 스무 살을 갓 넘어 보이는 아가씨가 매장을 두리 번 대며 들어서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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