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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남자, 그여자(일상 이야기)

눈물겨운 우정

by 꽃밭재꽃무리 2012.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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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장소로 가는 길은 빼곡한 낱알들을 힘겹게 매달고 있는 벼이삭에 온통 들녘은 황금빛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군데군데 물들어가는 은행나무 가로수아래에는 빨간 고추잠자리도 하늘대는 코스모스 꽃잎사이를 누비고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온 작은 소녀는 살금살금 잠자리를 잡겠다고 다가가고 있었다. 너 정 말 오랜 만이다. 눈물이 날 만큼 반가운 참으로 정겨운 풍경이었다. 약속장소에 도착하자 비닐하우스가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자그마한 마당가에는 대문도 담장도 없었다. 반가움에 가슴을 일렁이게 하는 백일홍, 봉숭아, 간들레꽃이 바람에 제 몸을 맡기고 있는 그 곁엔 누렁개들이 두어 번 컹컹 짖고는 귀찮은 듯이 다시 네 다리를 쭈욱 뻗고 늘어져 버린다. 하나 둘 눈에 익은 차량들이 마당 한 켠을 늘어섰다. 부지런한 안주인은 어느새 캐 왔는지 고구마와 감자를 커다란 찜 솥에 넣고는 불을 지폈다. 금세 도착한 사람들이 웅성대는 마당엔 두르르 멍석이 펴지고 푸짐한 채소와 삼겹살, 빠질 수 없는 소주까지 커다란 솥체 들려나온 옻닭은 국물이 정말 시원하였다. 한쪽에 피워둔 모깃불에선 진한 쑥향이 날아와 삼겹살의 고소한 냄새와 어우러지고 사람들을 이야기가 저물어가는 여름의 끝자락과 함께 무르익어갔다. 여기저기 웃음이 피어나 모기의 극성쯤이야 아랑곳도 없는 시간이었다.

“근대 왜 서진씨와 이석씨는 별명이 없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 있는데...”

술 한 잔에 기분이 좋아진 수영의 말이었다. 그랬다 동창생들인 그들은 다 별명이 있는데 서진과 이석은 없었다.

“정말, 두 사람은 원래부터 없었어요?”

“응 없었어,”

“아~ 그래요? 그럼 지금 만들면 되지, 서진씨는 바람둥이 바람둥이!!!”

손가락으로 서진을 가리키며 농인듯 진인듯 외쳐대던 그녀는 이석의 아내다. 그 말에 여자들은 재미있다고 웃어 재꼈지만, 기분 나빠지는 한사람이 있었다.

‘하~ 뭐 라구? 저 여자가 도대체 개념이 있는 여자야 없는 여자야! 참 짜증나는 여자가 아닌가, 하고 많은 말 중에 바람둥이라고?’

내 참, 부창부수라더니…….그 남편은 한밤중도 아닌 첫새벽에 남의 집에 와서 불란을 일으키더니 그 아내는 남편을 바람둥이로 만드네,

기분이 몹시 상하기는 하지만 한 잔술에 기분이 업 되어있는 그녀에게 따질 일도 아니라 생각하고 참고 넘겼다. 평소에 바른 말을 잘하는 그녀를 참 똑 소리 나는 여자라 생각했는데. 지난시간 여행길에서 본 그녀와 그날 본 그녀는 정말 아니질 않는가,

어둠속에서 들리는 물소리는 시원스럽고 정겹다. 그 시절 친구들과 물장구치던 냇가 그곳에가 있는 느낌, 저 만큼에 남자들의 웃음소리가 물소리에 실려 왔다. 생기발랄한 예진 그녀는 남자들과 함께 물고기를 잡겠다고 바지를 걷어 종아리까지 걷어 올리고 첨벙첨벙 물속을 걸어 그들에게로 멀어졌다.

어머, 반딧불이야! 와아 너 정말 반갑다 얼마만이니.ㅎ

냇가를 가로질러온 반딧불이 쑥부쟁이사이로 날아간다. 언뜻 보니 나이 많은 그녀는 커다란 바위 주변을 서성대고 있다.

“올라가시게 , 거기?”

“응, 위에 앉으면 편할 것 같아서 .”

“그러게요,”

함께 둘러보니 참 신기하게도 바위 한쪽에 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그곳을 딛고 올라가니 넓고 평평한 바위는 둘러앉기 그만이었다. 여섯 명이 둘러앉고도 자리가 남는다.

밤이 깊어지자 기온이 떨어지고 조금씩 추워지기 시작했다. 낭만도 좋고 기분도 좋지만 이젠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무심히 돌아본 자갈밭에는 이석의 아내가 홀로 앉아있었다. 무슨 생각이 깊은지 머리를 무릎에 묻은 체 요지부동이었다.

“효인아 춥지? 이리 들어와,”

다가앉으며 본인이 걸쳤던 숄 한끝을 내어준다. 그녀의 마음과 더불어 몸이 한결 따뜻해졌다.

“불러 봐요, 왜 저러고 있나! 뭐 고민 있나?”

“그러게, 혜진아, 이리와~”

그녀는 대답만 하고는 움직일 기미가 없다. 불빛이 철벙대는 물소리와 웃음소리, 그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제법 많은 물고기가 잡혔다. 함께 물고기를 잡으러 갔던 예진이 일일이 손질을 했다. 방안에 빙 둘러앉는 사람들, 수고로운 사람들이 있었기에 먹는 즐거움에 기쁨을 앞 둔 시간, 모두 둘러앉았는데 이석의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이석씨, 혜진엄마 어디 갔어요 차에 있나? 데리고 와요,”

“그러게 냇가에 있을 때부터 혼자 있드라구”

이석이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에 들어와 앉고 그의 아내가 들어와 앉았다. 그런데 인상이 영 불편하였다.

“혜진아 인상 펴 내가 말 할 테니까. 내가 할 말이 있는데 지난번에도 수호 탈퇴 할 때도 그의 와이프 문제도 있고 했지만 .나 탈퇴한다. ”

“뭐? 무슨 말이야 ?”

뜬금없이 탈퇴 하겠다는 이석의 말에 모두 어안이 벙벙하였다. 그때 이석의 아내는 휙 일어나 밖으로 나가 버리고, 그 말을 남긴 이석도 그녀의 뒤따라 나가 버렸다. 뭔가 미심쩍은 서진이 그를 따라 나갔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마냥 한마디 던져놓고 나가버린 이석 때문에 사람들은 술맛도 잃고 혼란마음에 두런거렸다. 잠시 후 이석을 따라 나갔던 서진이 들어와 이석의 입장을 말했다. 그리곤 효인에게 따지듯이 던져주는 말은 ,

“결국 너 때문이다. 지난번 너와의 일 때문이기도 하고 아까 냇가에서 이석을 이야기하는 어떤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야!”

효원은 정말로 화나고 말았다.

‘기가 차…….아니 첫새벽부터 남의 집에 와서 남편에게 여자가 있느니 어쩌니 하고 부부사이 이간질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 얘긴 다 접어두기로 한 것 아니었나! 다 끝난 얘기였는데 그게 왜?’

그러자 서진이 효인에게 원망스런 소릴 했다.

“너 때문에 친구들과의 사이가 나빠진다면 못사는 거지”

“뭐?”

“내가 뭘 어쨌다구 그래요? 세상에 남편밖에 모르고 남편만 믿고 사는 내게 여자가 있다는 둥 외박을 했다는 둥 불신을 심어준 게 누군데 나 때문에 뭐가 어째요???”

“너 때문에 친구들과 의리가 다 끊어진다면 못 사는 거지.”

“그래서! 친구 때문에 이혼이라도 하겠다는 소리에요, 그래요? 그게 무슨 부부!! 그건 부부도 아닌 거지 . 그래요 그런 건 나도 용납 못해요, 그러나 할 말은 해야 갰으니 혜진이 데려다 이 앞에 앉히라고 …….그녀도 알건 알아 야잖아! 왜 나만 당해야하는데?”

효인이 이성을 잃고 어느새 들어와 맞은편 서진의 옆에 앉은 이석에게 소리쳤다.

“가서 혜진이 데리고 오세요!!!!!”

평소에 조용하기만 하던 효인, 이십년을 넘게 보아 왔지만 큰소리 한번 내지 않던 효인의 모습에 이석이 당황했나보다.

“효인씨 내가 잘못했어, 내가 이렇게 무릎 꿇고 빌게, 야야! 그러지 마라 서진아 .”

그 모습을 보니 효인은 더 화가 난다. 지들 부부사이는 잘못될까 겁나나보다 남의 부부사이는 불신을 심어놓고 .

“무슨 남자가 아무데서나 그렇게 쉽게 무릎을 .다 필요 없으니까 혜진이 데려다 놓으라구요,”

효인의 말에 이석은 눈에 불을 켜고 머리를 강력하게 흔들며 손을 내 저었다.

“나 안 해, 나 이제 사과 절대로 안 해 .”

“이제 와서 남의 부부 사네, 못 사네 불화를 일으켜놓고 사과하면 다에요 혜진 데려와요!!”

효인은 기가 차다. 지가 뭔데 부부 일에 끼어들어 불란을 일으키고 그 친구 때문에 사네, 못사네 하는 서진도 기가 차다. 참 더럽게 눈물 나는 우정? 놀고 있다 참 빌어먹을 우정아.

옆에서 듣고 있던 친구가 보다 못해 나섰다.

“야 임마! 이석이 넌 할 말 없는 것 같다 그러니 그만해라, 서진이 너도 그렇다 그런 건 조용하게 둘이서 이야기 해야지 여기서. 어쨌거나 너희들이 잘못한 거다.”

즐거워야할 자리가 폭탄 맞아버린 아수라장이 되었다. 듣고 있던 총무가 제대로 화가 났다. 이석에게 일어나라고 소리친다. 이석은 그런 총무를 말리느라 낑낑대며 벽으로 밀어붙이고 총무는 뭐 어쩌겠다는 건지 그런 이석을 밀어내려 애쓰고 있었다. 그것을 보다보니 그 상황에서도 웃음이 났다.

‘뭘 어쩌겠다는 거야,’

그런 총무가 참 덩치 값과는 달리 귀엽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즐거워야할 술자리는 정신없이 끝나 버리고 잠자리를 펴고 누었지만 잠이 올 것 같지 않은 효인이 일어나 앉았다.

“내가 그냥은 좀처럼 못 잘 것 같아, 이대로 끝나버리면 나만 웃기는 여자 되어 버릴 것 같아서 완전 망가지는 거잖아 .지금까지 이미지가 완전 바뀔 거잖아, 나 얘기 해겠으니 들어봐요. 혜진도 들어야하는데 이 자리에 없으니 할 수 없고 듣고 나서 이해를 하던지 욕을 하던지 판단은 각자 알아서 하세요,”

효인은 그간의 이야기를 하였다. 다 듣고 난 한 여자는 기가 차다고 설레질 을 한다.

“아, 참 그래서 양쪽 말을 다 들어봐야 한다니까. 조금 전에 밖에서 들으니 완전 반대야 .다 효인씨만 나쁘게 말하던데?”

기가 차다는 듯, 세상에, 를 연발하는 그녀 말을 애진이 받았다.

“맞어! 맞어 .야~~ 이석씨 정말 보이는 그대로구나, 몇 번이나 애들 아빠한테 전화해서 효인씨가 뭐 어쨌다구 막 이야기해서 그런 줄 알았지, 평소에 본 효인씨 모습이 아니라서 참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던 중이야 말 잘해주었어 . 그런 일이 있는 줄은 까마득히 몰랐지 .”

“그럼 그런 일이 있으면 이해 못하지 외박이 뭐야, 늦게 들어오는 것도 이해 못할 일인데 거기다 여자가 어쩌구 진짜 웃기는 짬뽕들이야,”

“이해 못하지 절대로.. 그럼 !!”

동변상련이라 했던가, 이야길 들은 여자들이 더 씩씩거리며 분해하였다.

그러고 있는데 노크소리와 함께 서진이 들어왔다.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쓸데없는 이야기도 하지 말고 그냥 자, 지난번에도 이런 일이 있었지만 세상에 어떤 남자가 제 아내보다 친구가 더 좋겠어요. 안 그래요? 그저 친구들 앞이니 그렇게 얘기 한 거니까 그렇게들 생각하지 마세요.아무렴 아내가 먼저지 친구가 먼저일 수는 없지요, 친구들이 그렇게 얘기 하더라도 이해 좀 해 주길 바래요.”

그렇게 효인과 여자들을 달래놓고 나갔다.

“에효~ 이석씨는 술이 문제야, 어떻게 된 게 점점 갈수록 이상해져 아마도 술중독이지 싶네,”

“맞어! 이석씨 술 끊어야 하는데 걱정이네, 아니 어떻게 갈수록 욕도 많이 하고 점점 이상해져 사람이 .”

술자리가 끝나지 않은 밖에선 이석이 친구들에게 된통 혼나나보다 계속 질타당하는 소리가 들렸다. 잠자리에 누우니 창문으로 별이 들여다본다. 잠시 눈 붙이고 밤 주우러 갑시다. 자는 둥 마는 둥 안개가 하얀 아침이다. 비닐 하나씩 챙겨들고 주인장이 데려다준 산으로 밤을 주우러 갔다. 밤나무아래 잠자고 있던 그리움들이 새록새록 깨어났다.톡 풀잎사이하나 흔들면 .튀어가는 메뚜기 이슬에 몸이 무거워 둔하게 달아났다. 고구마를 캐고 줄거리를 다듬어서 돌아오는 길, 애진이 화가 잔뜩 나 있다.

“아니 저 미친놈이지, 내가 지 친구랑 살긴 하지만 나이가 다섯 살이나 윈데,”

“왜요,”

“그런 내게 .야! 지호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어? 지호가 너 엄청 고맙게 생각해, 이런 빌어먹을 .. 욕을 해주려다 어젯밤 같은 일 생길까봐 참 느리고 나 기절 하는 줄 알았잖아 ”

재혼을 한 그녀는 남편보다 다섯 살이나 연상이다. 술버릇이 고약해 술만 취하면 사람들이 그녀 옆을 꺼리는 그런 그녀 …….

“아침에 술 마셨나요?”

“응 , 집이들 밤 주우러 갔을 때……. 소주 마셨잖어, ..”

“에효, 그 사람도 술을 자제 해야 는데…….쯔쯔,”

 

 

 

 

 

친구!

참 좋은 말, 새삼스러울것도 없는 ..

친구를 참 잘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부쩍 많이 하게 된다.

본의 아니게 그로인해 아름다워 질 수도 형편없이 망가질 수도 있다는 ...

꽃을 이야기하다보면 어느새 꽃이 되고

시궁창을 이야기하다보면 어느새 스스로 그곳에 빠져있지 않을까 싶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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