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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 소설

세다리 몽생이 (24)

by 꽃밭재꽃무리 2014.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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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돈 주려고 기다렸는데…….”

시무룩하게 내미는 그녀의 손에 변함없이 놓여있는 동전,

“그건 아가씨 가지라고 했잖아! 난 필요 없다고.. 난 꽃 하나 키우고 있어, 그거면 되..

한숨 섞인 낮은 목소리로 중얼대며 강성호는 하늘을 쳐다 본다

“그 꽃, 언제쯤 피는데?”

고개를 갸웃대며 그녀가 묻는다.

휘청대는 다리는 성호를 그녀가 앉았던 바위에 걸쳐 놓는다.

“응, 그 꽃은 말이야, 훗날 때가 되면 필 거야, 아직은 몰라 언제쯤 피려는지.”

“피긴 피는 걸까?”

“응, 필 거야”

“그렇게 힘들게 피는 꽃은 얼마나 피어 있을까?”

“아마도 영원히....”

“에이, 그건 아니다. 세상에서 영원히 피어있는 꽃은 없어.”

“있어, 그 꽃은 지지 않을 거야, 영원히..”

갑자기 그녀가 큰소리로 까르르 웃는다.

“오빠 바보다! 정말 바보다.. 세상에 지지 않는 꽃이 어디 있다고, 있다면 그 꽃은 틀림없이 향기가 없을 거야, 스스로 피운 꽃이 아닌, 향기 없는 꽃이란 말이야, 깔깔깔, 치…….그렇게 오래 기다려야 하는 꽃이면 피지 않을 수도 있겠네, 난 그런 꽃은 안 키워.

마구 웃어대던 그녀가 쌩 하니 찬바람을 일으키며 가버린다.

현관문을 여니 캄캄한 방안은 쓸쓸하다. 아들이 떠나고 혼자 지네는 집안은 늘 절간처럼 적막하다. 보고 싶다. 한번만이라도 만나봤으면 좋겠다. 현지야! 전화기를 꺼내 들고 번호를 누르고 닫고 하기를 여러 번, 전화기를 집어 던지고 침대에 벌러덩 눕는다. 술기운이 아직도 가시질 않아 천장이 빙그르 돈다. 현지의 얼굴이 함께 돌고 전화선 저 끝에서 들리던 현지의 목소리도 천장을 둥둥 떠다닌다. 적막을 깨고 울리는 벨소리, 어둠을 환하게 밝히는 전화기에 뜬 번호는 현지다. 반가움에 술기운이 확 가신다.

“여보세요?”

"잠깐 운동 나왔어, 뭐하니?”

“응, 술 한 잔 먹고 들어와서 누었어, 안 그래도 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말?”

“응, 근대 너무 보고 싶다 현지야!”

 "."

“우리 한번 만나면 어떨까?”

“그래, 나두 보고 싶다. 우리 한번 만나자.”

“정말? 정말 우리 보는 거야?”

 

뜻밖에 시원스런 현지의 대답이 성호에겐 꿈만 같다.

“응, 날 잡아서 네가 올라와 나는 시간을 많이 낼 수 없으니까.”

“그래, 그럴게 고마워 현지야, 사랑해!”

마음은 이미 어두운 창밖을 날아 현지에게로 간다. 오늘밤 꿈속에서 만났으면 좋겠다. 성호는 이불을 둘둘 말아 현지인 듯  안고 잠이 든다.

이른 아침 서둘러 준비를 하고 아이들이 등교하자 외출준비를 하는 현지, 장롱 깊은 곳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낸다. 한참을 생각에 잠겼던 현지 뚜껑을 열어 내용물을 꺼내 목에 건다. 반쪽뿐인 하트모양의 목걸이가 형광불빛을 받아 반짝인다.

비행기를 타고 버스를 탄다. 꽤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약속장소에 도착 하니 현지는 이미 나와 있다. 커피 잔을 손에 들고 있는 현지에게서 그 동안의 세월의 흔적이 보인다. 한동안 어색하니 말이 없다. 무겁게 가라앉은 침묵을 깨고 성호가 입을 연다.

“행복하니?”

“응, 그렇지 머.”

현지가 생기 없는  미소를 짖는다

“그런 너는 왜 결혼을 안 하고 아직 혼자인 거야?”

“내가 말했잖아, 나에겐 오직 너 밖에 없어, 그 어린 시절에 심은 꽃씨, 아직 피우지도 못한 그 꽃은 지금도 내 가슴에 있다. 여기..

성호가 살며시 가슴을 보듬었다.

“.”

“궁금한 게 있어 현지야!”

“뭔데?”

“그때 왜 나를 떠난 거야? 한마디 말도 없이.”

“무슨 소리야, 그때 밤새도록 통화 했잖아, 그렇게 너와 정리하고 난 진혁 오빠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었고.”

“무슨 말이야, 난 그날 너와 통화한 사실이 없는걸.”

“정말이니? 그럼 내가 누구랑 통화 한 거야, 내가 그날 좀 취했었는데 난 당연히 너라고 생각했고 너는 내 말만 듣고 ,응응 하면서 다 좋다고 말 하드만. 그래서 나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진혁 오빠와 결혼을 결정한 건데.”

“아무튼 난 아니야, 그렇게 잠적해버린 너 때문에 많이 황당했지, 아무런 영문도 모르고.”

“미안해, 나 얼른 들어가 봐야 해, 너 두 돌아가려면 바쁘겠다. 그치?”

어색한 듯 미안한 듯 웃고 있는 현지,

아직 할 말을 반도 안 했는데 시계를 보는 현지는 벌써 돌아가려 한다.

“왜 벌써 가려고?”

“응, 가야 해 어서 가서 저녁준비 해야지, 그이 돌아오기 전에 아이도 돌아올 때 되었고.”

“그럼 가봐야지,”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성호도 현지를 따라 일어난다.

“버스 타는 곳까지 같이 가자, 먼 길 가려면 힘들겠다.”

일어서는 현지의 블라우스를 비집고 은빛 목걸이가 나온다. 그런데 반쪽 짜리 하트다.

“어, 왜 반쪽이야, 목걸이가?”

“응, 이거 내 생에 찾아야 할 반쪽이야.”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있어, 나중에 이야기 해 줄게 가슴 무너지니까 묻지 마라.”

쓸쓸하게 웃는 현지, 가방을 둘러맨 뒷모습이 초라해 보인다.

“남편이 잘 해주니?”

“응, 잘 해줘.”

대답하는 현지의 눈에 얼핏 반짝이는 것을 보는 성호

“정말 들어가야 하니? 이대로 헤어지기 정말 아쉽다. 우리 호프라도 한잔 더 하자.”

말없이 발걸음을 옮겨놓던 현지,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는 곳, 시선을 따라간 성호의 눈에 비친 글자 모텔이다. 현란한 네온이 온통 둘러싼 동화 속 그림 같은 집, 반짝이는 별빛이 정신을 아득하게 한다.

“그래 잠시 시간을 더 보내자. 오늘은 나도 들어가기 싫다. 호프보다는 진한 사랑을 마시고 싶다. 안 될까?”

“어? 어, 현지야, 저 곳 말이니?”

“응, 너 나 사랑한다며 나 보고 싶어 여기까지 달려 온 거 아니니?”

“그랬지, 그런데 난..”

성호의 말이 끝을 맺기도 전에 현지의 발길은 모텔로 향하고 있다. 자석처럼 현지의 뒤로 이끌려가는 성호 치렁치렁 내려진 커튼을 헤치고 들어가니 이미 주차장 가득한 자동차들 저마다 눈을 가리개를 하고 있다. 아직 해는 중천에 있는데... 앞서 들어가 계산대 앞에 서는 현지, 넋을 놓고 있던 성호가 얼른 뛰어가 계산을 하고 열쇠를 받는다. 502호란 숫자가 또렷이 새겨 있는 열쇠, 말이 없는 두 사람, 잠시 어색한 공기가 흐른다. 현지를 바라보는 성호의 가슴에 만감이 교차된다. 현지는 맞는데 예전에 현지는 분명 아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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