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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 소설

세다리 몽생이 (25)

by 꽃밭재꽃무리 2014.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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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한 체 마네킹처럼 굳어져 있는 현지, 그 눈 속에는 복잡하고 미묘한 세계가 들어 있다고 성호는 생각한다. 딩동~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502호가 눈앞에 있다. 떨리는 손으로 방문을 열자 망설임 없이 들어가는 현지는방안을 휘 둘러보고는  단정하게 옷을 벗어 걸고 성호의 옷도 반듯하게 걸어준다. 푸른빛이 도는 꽃무늬 블라우스와 성호의 체크 남방이 나란히 걸렸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현지, 뒤따라 나온 성호에게 냉장고를 열어 시원한 캔 하나를 따서 손에 쥐어주고 자신도 단숨에 들이킨다.

“아, 시원하다 목말라 죽는 줄 알았다.”

차가운 음료를 단숨에 들이킨 현지는 어느새 명랑해져 있다.

“차가운 걸 그렇게.. 천천히 좀 마시지, 머리 아프잖아!

“아니 괜찮아, 너는 어찌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느리니?”

“어, 그렇지 머”

머쓱해진 성호가 웃음 반 찡그림 반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야아~ 정말 오랜만이다. 에구~ 요 얼굴에 주름살 생긴 것 좀 봐, 아주 머리에 희끗희끗 파뿌리도 났는걸, 호호호”

어색한 공기를 깨고 현지가 주절대기 시작한다. 굳어 있던 성호의 표정이 조금씩 이완되기 시작한다.

“남편이 잘 해주냐고 물었지?”

“응, 으응 그랬지”

 

“저녁마다 남편은 뭔 일이 그렇게 많은지 서재에서 나올 줄을 모르지,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나는 혼자 잠들고 눈뜨면 아침이더군,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남편 보내고 정신 없이 대충 집안일 끝내고 출판사로 달려가고 비몽사몽 하루가 지나고, 퇴근하기 무섭게 집으로 달려 와야 하고. 나 그렇게 살아, 그게 행복이라면 행복한 거지 모.”

넋두리 하듯 주절대는 현지, 축 늘어진 어깨엔 땡비 같이 영악하던 가시네는 어디에도 없다.

“에구, 그렇게 사는 구나 우리 현지!”

가엾은 마음에 보듬어 앉는 성호에게, 아무런 저항 없이 안겨오는 현지, 오랜만에 해후한 두 사람은..세월의 숫자마저도 아득하다.

“고마워! 정말 오랜만에 행복했어”

“그래 현지야! 우리 조금만 더 기다리자, 행복하게 웃으며 살 날이 꼭 올 거야.”

훗날 우리의 고향 그곳에서…….”

그간의 그리움을 보상받기라도 할 듯이 격렬하게 사랑을 나눈 뒤, 현지를 안고 아늑한 고향으로 찾아 드는 성호,

“어머, 일어나 성호야 너무 늦었다.”

허겁지겁 모텔을 빠져 나온 현지는 급하게 집으로 돌아간다. 비행기 속에서 조금 전 일을 생각하니 참으로 꿈만 같다. 스르르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든 성호는 주차를 하고 언제나처럼 집으로 가는 길이다. 오늘은 그녀가 없네, 생각하며 늘 그녀가 앉아있던 바위를 지나는데 어느새 다가 왔는지 그녀가 눈앞에 서 있다. 무심히 그녀를 보던 성호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친다.

“오빠 이거, 내미는 손바닥엔 조금 전 현지의 가슴에서 본 목걸이 그 반쪽이다.”

“이거 왜 네가 가지고 있어?”

“원래 내 거야..”

“뭐? 그런데 왜 반쪽이야?”

“몰라, 원래부터 반쪽만 있었어. 근대 오빠!  여기에 꽃은 잘 자라고 있어?”

그녀가 성호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화들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다. 곧 공항에 착륙하겠다는 안내 방송이 흐르고 있다.

 

 

다음날 카페에 또 다른 공지가 올라온다, 동인지가 편집과정에 인정받아 서점에 배포 한다는 것이다. 그걸 모두에게 승인 받아야 한다는, 한 사람 이라도 반대하면 배포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건 참 좋은 소식이다.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모두 수락한다. 그렇게 동인지가 탄생 되고 이백 만원이면 된다던 출판비용은 페이지 증가로 사백 만원이라고 한다. 동인지를 주문한 만큼 분담금이 주어지고 계약금 빼고도 얼마간이 남는다. 그것을 성호가 부담하기로 한다.

“결국 이렇게 될 거 처음부터 서로 나누어 분담하기로 했으면 좋을 걸, 괜히 성호씨 혼자 다 부담했다고 해서 무척 미안하고 마음이 불편했단다.”

“그래, 이제라도 이렇게 됐으니 됐지 머,”

수선화의 말에 답하는 현지의 말이다.

“어쨌든 고맙다, 너와 성호씨 덕분에 책도 다 만들고.”

“그런데 좀 이상한 말을 들었어.”

“무슨 말?”

“사실은 이야기 안 할까 했는데. 나머지 분담금 성호씨가 다 부담해도 되는 걸까 싶어서.”

“왜? 얼마 안 되는데.”

“그렇긴 한데 내가 좀 이상한 말을 들었거든 그게 사실이라면 혼자는 좀 부담일 것 같다는 생각이지.”

“그게 뭔데?”

“응, 성호씨 형이랑 양 선배랑 친구 사이인데. 성호씨가 말한 것과는 너무나 달라서. 그 형의 말이 성호씨가 너무나 어려워서 아들도 원하는 대학을 못 보냈다는 거지.”

“정말?

“응, 떠도는 소문도 아니구 형이 한 말이라는데.”

“그래?”

“응, 무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믿지 않을 수도 없고 그러네.”

“그래, 알았어,”

괜히 이야기했을까! 수선화의 마음이 영 불편하다. 그래도 만약에 그 말이 사실이라면 성호에게 혼자 나머지 대금을 떠안길 수 는 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잘 한 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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